그래서, 내 망상의 산물이 현존한거라고 하는건가?
아카시는 눈을 감지 않고 자신 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회색빛의 상대는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커다란 '입'은 있었다. 그것은 아카시의 물음에 순순히-음의 높낮이 없이 대답해 주었다.
[그래.]
어디서부터?
[그의 존재의 시작에 대해서 말하자면, 옥상에서부터겠지.]
네 말대로라면, 윈터컵에 나가기 이전에 나는 퇴부한 라쿠잔 농구부원들의 자료를 보다가 상상으로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말이겠군.
[그렇다.]
그리고 그 상상했던 인물은, 내가 상상한 그 시점부터 이 세계에 현존하기 시작했던 거고.
[그렇지. 이해가 빠르군.]
...지금 나와 있는 그- 마유즈미 치히로는, 네 말대로라면 상상의 존재. 그렇다면 내가 물어봐야 할 것은 '왜'와 '어떻게'겠다만.
둘러싼 공간이 파르르, 꿈틀거렸다. 주변은 보통의 교실 풍경이었지만 온통 흑백사진처럼 차가운 빛만 띄고 있었다. 아카시와 이 모를 것이 있는 곳은 사실 교실이 아니라 다른 공간일게 분명했다.
아카시는 침착하려고 애썼으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왜-에 대해서는 간단하다. 네가 바랐기 때문. 어떻게-의 답으로는, 그 힘의 원천에 대해서는 나라고 해두자.]
너는 누구냐.
[글쎄, 나도 몰라. 내가 나를 자각한건 얼마 되지 않아서. 약 일이년쯤 되었군.]
...일이년.
아카시의 머릿속이 뒤죽박죽 뒤섞였다가 이내 긴 직선만을, 그렸다. 자신은 지기 싫은, 실패는 모르는 승리만을 위한 또다른 인격을 깨웠었고 동시에 트리거로 강력한 의지를 담은 소망을 이룰 힘을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승리에 어울리다고 생각하는 '신형 식스맨-마유즈미 치히로'를 만들어냈다.
마유즈미, 치히로...
[결국 넌 실패했지. 하지만 그건 정답이었어. 사실 넌 지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동료들에게.]
치히로, 아니. 마유즈미 선배는 그렇다면 내 소망에 인한 도구였나?
아카시는 말을 정정했다.
실패를 위한 도구.
[글쎄, 답은 나도 몰라. 너 같은 소환자는 본 적이 없어서 나도 알 수가 없군. 인간의 감정이란 어려워. 네 이중인격도 그랬고.]
...그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건, 그렇다면?
[네가 아직도 그에게, 자신의 소망을 담고 바라고 있다는 거겠지.]
아카시는 웃었다. 아, 그렇다면 그는 영원히 사라질 일 없겠구나. 자신이 그에게 이제는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이상.
그는 영원히 아카시의 세계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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