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 치히로.


방금 전에 분명 대충 도닥거려서 (배를 세게 친다고 아카시가 중간에 중얼거려서 그 후로 세기를 조절하느라 힘들었다) 자기 옆에 재워둔 아카시는 어느샌가 깨 있었다. 그리고 그 말투를 보아하니, 아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시는 자고 있는게 맞다. 깨어난 사람 또한 아카시라는게 문제지. 마유즈미는 읽고있던 책을 내려두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해야지.

-농담이지?

-그래. 오랜만이네. 잘 지냈냐고 해봤자 소용없겠지만.


아카시는 웃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한 일인가, 그 지기 싫어하시던 지배자님께서 어째서 다시 깨어나신건지 마유즈미는 머리를 굴려봐도 알 수 없었다. 마왕은 봉인했지 않았나? 물론, 자기가 그런건 아니고 사실은 용사님이 마왕을 스스로 소환하여 마왕으로서 세상을 군림하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의 과오를 깨닿고 다시 용사로...아무리 봐도 아카시가 용사 역은 아녔지만. 마왕쪽은 맞아도.


-그거야, 너를 보고 싶어서지.

-그거 참, 이젠 아주 분리된 것 처럼 말하네. 그땐 안 이랬잖아, 무언가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수준이었는데 이젠 크고나서야 방을 분리하여 쓰기 시작한 형제 같다고.

-형제라고 걔는 날 생각하긴 하지. 내가 나중에 생겼긴 하고. 하지만 동생이라고 여겨지는건 싫어.

-거기서까지 진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지?

-흐응.

-흐응은 무슨. 누워서 그렇게 폼 잡아봤자 안 멋있다.


여전히 아카시 세이쥬로는 두 사람이구나. 마유즈미는 정말로 비일상이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바로 옆에 존재한다는게 믿겨지지 않으면서도, 나름 잘 적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꼭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다.


-나랑 너랑 사귀는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견해를 물어보고 싶습니다만.

-내가 먼저 치히로에게 고백했을땐 맘속으로 머리를 한대 쳐주고 싶었지.

-뭐냐, 혹시 그건 '먼저 고백한 사람이 진다'라는 데에서 나오는 리벤지냐.

-글쎄. 그래도 말이지. 나였어도, 먼저 고백했을거야.


그 어이없는 말에 마유즈미는 한참동안 침묵했다.


-그건 너만의 온전한 생각이자 감정이냐?

-나만, 이라니?

-혹시 다른 인격의 영향을 받거나, 그럴 수 있는건 아닌가 묻는거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둘이자 하나야.


방금껀 어제 본 아니메에서 봤던 대사 같은데.


-내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녀석도 없어. 그 녀석이 없었다면 나도 태어났을리가 없지. 그리고 치히로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아카시는, 없어. 인격이 두개라고 해도 상기 위 사실들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는 쪽이다.

-대단한걸 단정하고있네.


자신의 논리에 수긍하지 않는 마유즈미를 빤히 바라보며 아카시는 윗몸을 일으켰다.


-감정이란건 이성으로서 자제되어지고 눌러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으니까. 치히로를 향한 감정, 생각. 느낌. 그리고 결국 인정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길을 걷고 있다고 알아챘을때가 이미 늦어서 고백한거였어.

-...이럴땐 뭐라고 말해야하냐, 영광이라고?

-사랑한다고, 말해.

-... ...

-말해줘. 치히로.


떼를 쓰는듯한 어린아이의 칭얼거림. 명령처럼 들렸지만, 그것은 결국 아카시의 외침이었다. 몇번이나 혼자 내면에서 곪고 있었을듯한 말. 마유즈미는 한숨을 내쉬며 아카시를 껴안았다. 네녀석은 모를거다, 얼마나 내가 널 좋아하는지. 네가 두명이든 세명이든 몸에 수만명의 영혼이 들어있는 강령술사라고 해도 좋아할 자신이 지금은 조금 있다. 마지막은 사실 좀 오버니까 봐 줘. 그정도 비일상은 감당할 자신이 없어. 내 영원한 비일상은 너만으로 해 두자.

그리 생각하다가, 중얼거리듯이 말을 내뱉었다. 손이 올려져있는 자신의 등이 따뜻했다.


-말하면 내가 다 들어줄 지 알고 말하는거냐? ...쳇, 맞았다고. 사랑해, 아카시 세이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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