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미래의, 고교 3학년 아카시와 대학교 1학년 마유즈미가 연애하며 반 동거한다는 설정으로
12편정도의 옴니버스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03. 귀가길과 그 장소
도보 15분, 역으로 다섯 정거장, 내려서 버스로 세 정거장쯤. 내려서도 조금 골목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길이었다. 아카시라면 한두번만 갔더라도 눈을 감은 채로 갈 수 있다. 밤에는 가로등이 얼마 켜지지 않은 어두운 골목이라, 마유즈미가 같이 동행을 한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몇 번 이고 아카시에게 몸 조심하라고 말하곤 했다.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거리는 아니지만 아카시는 마유즈미가 자취를 하고 난 뒤로부터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거의 매일 마유즈미의 자취방에 갔다. 걸리는 시간은 라쿠잔으로부터 약 한 시간 내외. 왔다갔다하는 시간 내내 아카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그에게는 휴식 시간이었다. 내일 할 부활동 스케쥴이나, 오늘 했었던 전반적인 부활동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되짚어보기도 했다.
자취방에서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는 시간은 10시쯤이니 아카시는 마유즈미와 저녁 식사를 하고 세 네시간 정도를 함께하기 위해 매일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면 그가 있었다.
그가 있기에 온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얻은 마유즈미의 자취방은 빌라의 원룸이었고, 한사람이 보통 사는 작은 방이었다. 다만 침대만큼은 더블이라 방이 가득 차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텔레비젼은 없었고, 대신 책상 위 마유즈미 전용의 노트북이 한대. (마유즈미는 입학 기념 선물로 받은 것이라며, 데스크탑으로 바꾸고 싶다며 투덜거리면서도 끝내 바꾸지 않았다) 원래 방에 있었다던 냉장고. 화장실과 따로 있는 욕실에는 샤워 부스 뿐, 욕조가 없다. 옷장 하나, 작은 서랍장 하나. 협탁 하나. 책장 하나. 이인용 식탁 하나. 빨래는 층마다 공용으로 세탁기를 쓴다고 했다.
아카시는 이런 방에는 생전 처음 와봤었고, 며칠 있다가 마유즈미에게 에어컨과 난방이 되는 기기를 벽에 설치하길 권했다. 아카시의 자금으로 설치할 눈치자 마유즈미는 몇 차례 거절하다가 '네가 더워하거나 추워할까봐.' 라며 허락했다. 덕분에 여름에 둘은 에어컨을 켜 두고 침대 위에서 쾌적하게 껴안고 뒹굴 수 있었다. 시원한 목덜미와 턱 끝에 뜨거운 입술을 서로 부비적거렸다.
"더블로 살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부모님께는 예산만 받았고, 그리 비싼건 아니지만."
싱글 베드였다면 분명 다 큰 남자 둘이서 눕지는 못 했을거라는 데에는 둘 다 동의했다. 침대는 방에서 가장 큰 의미와, 존재감을 잘도 피력했다.
아카시는 학기 중 목요일 밤에는 외박계를 썼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네 번이 가능한 라쿠잔 기숙사의 외박계였다. 학생들 대부분은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작년의 아카시또한 그 부류였으나 이제는 달랐다.
금요일에는 당연히 자고 가고 주말은 토요일 오전의 부활동 연습을 제외한 내내 둘이서 함께 보냈다. 같이 장을 보러 가거나 밖으로도 놀러 나갔으나, 역시 손을 잡고 가까운 거리에서 바로 키스할 수 있는 자취방 안이 대부분의 주말을 차지했다. 마유즈미는 아카시에게 답답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아카시는 이 편이 자신도 좋다고 했다.
평일에 마유즈미와 작별하고 돌아가 기숙사 침대 위에 몸을 뉘인 아카시는 눈을 감고도 그 곳이 떠오르곤 했다. 마치, 상상속 그 방 침대 위 마유즈미는 너무나도 옆이 비어보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게 상상이 아님을 알아서 아쉬움을 삼키고 잠에 빠지곤 했다. 내일 또 그는 부활동 후 그곳에 갈 것을 알기에 꿈도 꾸지 않고 잘 수 있었다. 마유즈미도, 알고 있을 것이다.
2. 골든위크@트러블(먹ts적)/소설/20p/1500원(예정)
골든 위크에, 대학생인 마유즈미의 자취방에 갑자기 찾아온 아카시.
후천적 ts물로 짧습니다. 전연령가.
<1>
문을 열어주지 말걸, 이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문을 열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빗소리가 들리는 문 밖에서 조그마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선배’라고 부르며 철문을 콩콩 두드리고 있다면 문을 열지 않을 녀석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신종 사기 수법이라고 해도 현대의 모자란 녀석들은 모두 넘어가버리지 않을까. 분명 먹힐만한 사기 수법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모자라다는 거에 대해서는 이번만큼은 도저히 반론할 수가 없다. 심지어 평생 들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류의 자아성찰이다.
문 밖의 결과물은 지금 내 품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모르는 얼굴, 은 아니지만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내가 아는 진짜 그 녀석인가. 여성의 신체를 가진 <아카시 세이쥬로>는 본래의 그 녀석인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분명 본래의 모습이었다. 물론 오래전이긴 하다. 현재는 4월. 내가 라쿠잔을 졸업하고, 교토 대학을 들어간 지도 한 달이 지났으며, 아카시 세이쥬로와 작별 아닌 작별을 고한지도 좀 된 때였다. 물론 녀석은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씩 메일을 보내며 나와의 친분관리를 하고 있던 거 같지만 거기에 대해서 나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새 학교, 새로운 환경, 새로운 배울 것은 날 혼란스럽게 했으니까. 녀석에게 답을 주는 주기는 점차 길어졌다. 딱히 메일을 주고 받을 사람이 없어서, 메일 함의 알림이 깜빡거리면 '또 아카시군.'하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우응, 하고 입술 사이에서 작게 신음이 나온다. 여자아이의 작고 앙다문 붉은 입술이다. 고개를 내려다보자 아까 내 욕실에서 씻고 나와 제대로 말리지 않은 긴 머리 사이로 물방울이 보였다. 진짜 감기 걸리겠는걸, 하고 수건을 옆에서 집어와 깨지 않게 살살 부벼줬다. 아카시는 왜 이런 모습인지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우리 집 앞까지 걸어왔는지, 기숙사에서 신는 슬리퍼에 몸이 줄어들어 겨우 걸친 헐렁한 체육복, 체육 가방 하나. 문이 열리고 내가 당황해 바라보자 "마유즈미 선, 배."라는 말 뒤에 내 품으로 쓰러졌다. 차가운 빗방울과 다르게 뜨거운 몸이어서, 업어다가 욕실에 데려다주고 씻게 한 다음(용케도 정신을 잃진 않았다) 내 옷을 입혀 내 방 침대 위에 눕혀놨다. 그러자 하는 말이─
"추워요, 안아주세요."
─…라니, 이건 어딘가의 소설도 아니고. 급전개가 너무 심하잖냐. 겨우 침착한 얼굴로 내가 이불로 괜찮지 않냐고 물어보자 고개를 저어 어쩔 수 없이 나는 침대 맡에 기대어 150cm와 장발을 가진 후배 아닌 후배 녀석을 끌어안아 다독거리며 재워주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로 제멋대로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설프게 배를 다독거려주다가 곡선이 느껴지자, 볼이 괜히 붉어진다. 다급한 일들이 지나가자 이제야 인식되는 거, 라고 해야 할까. 후배가 여자의 몸이 되어있다. 아까 욕실에 같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보진 못했지만 얇은 옷을 걸친 지금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 근육이 없는 말랑한 배, 그 위로 봉긋 솟아 손바닥으로 쥘 수 있을 크기의 가슴. 통통한 허벅지와 보드라운 살결. 이 모든게 너무나도 낯설어 마유즈미 치히로는 ─ 나는 도망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