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술에 약하군. 얼굴이 벌개져서 술주정을 부리는 마유즈미를 보며, 아카시는 도수가 낮은 와인이 담겨있는 잔을 홀짝였다. 사실 마유즈미 앞에는 맥주 캔이 몇개 정도 쌓여있으니 그 누구라도 취하지 않을수 없다는게 맞는 듯 싶다. 안주는 거의 떨어진 상태. 코타츠는 데워진지 오래되었고 텔레비젼속 홍백가합전은 끝났다. 새해구나, 새해에 처음으로 알게 된 그의 주정이 그냥 퍼질러 자는 정도라면 귀엽게 봐 줄 수 있었겠지만 오히려 이쪽은 기대를 져버리고, 불타오르는 쪽이었던 거 같아 문제였다.
"아카시 넌 말이지, 애니화된다면 절대 주인공 역은 아니니까-라고 생각하는데.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지 않나. 그런 스펙에, 그런 언동에 외형에. 분명 작화가들이 그리기 어려워 할 얼굴이라고. 2차 창작하는 사람들이 동인지도 내기 어려워할 까다로운 성격때문에 어쩔 수 없이 캐릭터 설정 붕괴만이 가득한 AU 동인지가 코미케에...~ 아아, 엉망진창으로 당하지 않으려나. 차라리 주인공 포지션쪽의 적은 어때. 오히려 그 쪽이 잘 어울리는거 같은데."
-평소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는걸 입 밖으로 내뱉는 술주정이었나보다. 술이 취했는데 전혀 늘어지지도 않는 말재간, 상상 이상인데 말입니다, 마유즈미 선배.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아카시의 반응을 끌어내고 싶은지 마유즈미는 좀 더 히죽거리는 늘어진 표정으로 주정을 계속해나갔다.
"주인공이라면 역시 이번에 이긴 세이린일까- 그쪽의 식스맨, 분명 뒷설정이 깊어보이던데. 어때, 악역 리더 캐릭터씨. 우리가 출연할건 점프계 스포츠 소년만화인가? 부녀자들한테 인기 많겠군. 내가 바라는건 라노베쪽이지만 농구하는 남고딩들로 나올 라노베는 없다고. 너 정도면 기적의 세대라고 했으니 굿즈 정도야 나올 수 있겠지~ 성우도 꽤나 비싼 사람 쓸거같아도 유감스럽게도 아카시 세이쥬로의 캐릭터송은 전혀 안떠오르지만!"
그리곤 뭐가 재밌는지 혼자 큭큭대며 맥주캔을 치며 웃는다. 즐거워 하는거 같긴 한데, 반은 알아듣고 반은 그러지 못한 아카시는 어떻게 반응해야하나 하다가 유리로 만들어진 컵이 깨질까봐 일어서서 와인잔을 저쪽 식탁에 가져다놓고 왔다. 다시 돌아와보니, 마유즈미의 상태는 반쯤 넉 다운이다. 그렇게나 텐션 높여 떠들었으니 뭐 무리는 아니겠지만.
"마유즈미 선배."
"으응. 왜."
바닥에 늘어진 마유즈미의 머리를 들어 제 무릎 위에 받힌다. 다음부턴 덜 마시라고 충고해야겠군. 열이 오른 이마를 쓰다듬으며 아카시는 텔레비젼을 껐다. 좁은 마유즈미의 방은 입을 닫은 둘 뿐만으로, 조용하다.
"제가 만화의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악역이든 괜찮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걸 위해 농구를 할 것이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띠지에 나올만한 말을 엄청나게 한단 말이지, 너는."
머리가 아파오는지 마유즈미는 팔을 들어 제 이마를 덮으려다가, 아카시의 손과 맞닿아 잡혀버렸다. 놔달라곤 하지 않는다. 눈을 감은 마유즈미를 보며 아카시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뭐던 간에, 저는 선배와 같이 한 지면에 나왔을테니까 만족합니다. 지금도 나오고 있다면 외전입니까?"
"이런걸 시시한걸 소재로 쓸 작가는 없어."
"그렇네요."
아카시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무릎을 차지한 마유즈미에게, 짧지 않은 시간동안 키스했다. 숨막혀. 그리고 이건 시시하진 않지만 게재되는 잡지가 달라진다고, 아카시. 이어서 두번째 키스를 하려고 하니까 아카시의 배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려, 어쩐지 거절당해버렸다.
그리고선 웅얼거리듯이.
"너, 캐릭터 송 불러봐."
"... ..."
"무관 녀석들은 듀엣송 부르겠지, 너도냐? 넌...안돼... 내 성우는 노래를 잘 못부르니 말이다. 너랑 나랑 듀엣송은 없다고-."
누운 마유즈미에게 아카시의 허리가 꽉 두 팔로 붙잡힌다. 술 취한 사람은 힘이 세다더니 어쩔 수 없이 자세를 바꿔 바닥에 누워서, 마유즈미에게 안긴채로 있기로 했다. 알콜 냄새가 났다. 아까 먹은 오징어 안주 냄새도 나고, 마유즈미 본연의 냄새도 난다. 아카시는 자신이 남들에게 어찌 보이든, 이 세상이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이든 악역이든 뭐든 이제는 괜찮았다. 마유즈미와 같은 칸에 들어가 있다면 그거로 지금은 좋았다. 자고 일어나서는 같이 가라오케라도 가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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