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타는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고어, 성적인 표현 아님)







"...세이쥬로."


제 연인의 낯선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며, 마유즈미는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떠서 앞을 바라본다. 앞이란건 천장이 아니라 침대의 옆 자리이다. 그리고 제 예상과는 다르게 침대는 비어있다. 일부러 자취를 하기 시작할때 샀던건 더블 사이즈라, 성인 남자 한명으로는 꽉 차지 않는 침대인게 이럴 때는 조금 야속해진다. 너무 티가 나니까, 자신이 혼자란게.


"세이쥬로?"


어제 오랜만에 술을 먹어서 그런가, 다시 한번 부르니 머리가 골 안쪽에서부터 찌잉 울린다. 잘 하지도 못했는데 벌컥이며 마셨던게 이제야 떠오른다. 아주 많은 양은 아니긴 했고...고주망태는 되지 않았던거 같은데. 그나마 오늘이 게다가 일요일이어서 다행이지, 마유즈미는 겨우 윗몸을 일으켜서 침대 헤드에 기대었다. 손을 뻗어 옆자리를 만져보니 온기가 남아있다. 방금까지는 여기 있었다는 뜻이다.


'편의점에라도 갔나...'


종종 아카시는 그러곤 했다. 동거아닌 동거를 하는 동안, 같은 시간에 자도 마유즈미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하거나, 신문을 읽고 있거나 가끔은 마유즈미를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아카시가 제 공간에서 달그락거리며 그릇을 만지는 소리나, 바스락대며 종이를 넘기고 숨을 내쉬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 순간은, 그 아침들은 얼마나 소중하고 벅찼었는가. 하지만 마유즈미는 결국 자신이 깨야 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몰래 눈을 감고 누워있다가(사실 이미 들켰을지도 모르겠지만) 눈을 떠서 연인에게 다가가는, 그런 일상이었다.


'언제 돌아오지, 휴대폰은 가져 갔나...젠장, 내건 어딨는건데.'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떠서 바닥을 더듬어보니 누가 던진듯한-물론 자신이겠지만-은색 휴대폰이 싸늘하게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배경화면이 켜지자, 아카시의 사진이 보인다. 물론 자신이 설정해 둔 것이다. 아직도 그 사진을 찍던 때가 떠오른다. 자신이 크리스마스때 선물한 스웨터를 입고, 멋쩍은듯이 렌즈를 보고 미소를 짓는 아카시였다. 연한 하늘색이 잘 어울리지 않을 줄 알아서 마지막까지 색을 걱정했는데 잘 어울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고... 머리가 또 아파온다. 연락하려다가 말고 다시 휴대폰을 옆 협탁에 놔둔다. 먼저 아침이나 먹고있는게 낫겠어.


주방으로 다가가 2인분의 에그 스크램블을 한다. 엊그제 사둔 식빵이 있으니 잼을 발라서 곁들여 먹으면 괜찮을 것이다. 잼도 미리 꺼내서, 빵은 조금 구워두는편이... 라고 생각하다가 배가 꼬르륵거려서 그냥 홀라당 다 먹어버렸다. 아카시가 이정도로 삐질 녀석은 아니니까, 그대로 가만히 포만감을 느끼며 식탁에 앉아있었다. 그저 움직이기 싫어져서.


옷걸이 쪽을 돌아 보니 어제 아카시가 입고 왔을 코트가 없다, 그렇다면 분명 나갔단 것이고 메모 하나 없이 나갔다는 거라면... 마유즈미는 설거지를 느릿느릿 하며 후라이팬에 남은 스크램블을 정리해 덮어두었다. 돌아오겠지, 언제나처럼. 또 찾아올거다, 그 때 처럼. 자신은 언제나 앉아서 책을 보고 있으면 오는 쪽은 그 녀석이었으니까.


지끈거리는 두통과 자기암시를 무시하고 막상 직시하려고 하니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마유즈미는 고무장갑을 벗고 눈가를 비볐다. 후회와, 자책감으로만 가득 찬 눈물이어서 쉬이 멈추질 않았다. 조금 더 내가, 내가 그때, 내가 아카시에게...나는... 이어가지 못하는 말들만이 가득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엉엉 소리내어 우는 법은 기억나지 않아 그럴 수가 없어서 바보같이 그렇게 질질 짜다가 결국 침대로 다시 되돌아와 엎드렸다. 온기는 착각이었다, 아카시는 어제 술에 취해 잠든 자신을 보다가 새벽에 떠났을 것이다.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던졌던 휴대폰이 깨지지 않은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아니, 차라리 깨졌으면 좋았을걸. 고장나서 영영, 메일 주소도 그동안 나눴던 메일들도 사라져버렸다면 좋았을걸...


"세이쥬로."


다시는 그의 앞에서 부를 일 없는 이름을 나직히 중얼거렸다. 이렇게 부르면 아직도 떠오르는 그의 표정과, 자신을 향한 눈빛과 손길과 체취를 떠올렸다. 껴안고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던게 언제부터였더라. 언제부터 사귀었지? 왜...이렇게 된걸까. 사고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뒤죽박죽으로 섞여버려서, 고장난 로봇이 된 기분이라 마유즈미는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했다. 다시는 아카시와 같은 아침을 보낼 수 없다는걸 직시해야만 했다. 그리고 살아가야만 했다. 사람 한명 때문에 죽느니 사느니 난리를 치는건, 바보같은 일이니까...솔직히 지금껏 매체에서, 뉴스에서 보며 그렇게 여겼었지만 왜 그 사람들이 그랬었는지 지금 아주 알 수 없는건 아녔다. 네가 내 곁에 없어도 살아가야지... 방금 먹었을텐데도 배에 공복감이 느껴졌다. 이제 뭘 해야할지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평소같았으면 아카시와 함께, 주말 오전엔... -


...마유즈미는 신경질적으로 쥐고있던 휴대폰을 던져버리려다가 말았다.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뜨거운 눈가만을 꾹 눌러 억누르고 억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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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첫 아침 날이라는 느낌으로 써 봤습니다. 아픔을 딛고 재결합해라 적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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