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개념 무시하고 쓴 TFS기반 적먹+황립/






"사귀는 사람이라도 있어?"


서점에서 마유즈미가 고른 책을 계산해올때까지 카사마츠는 입구 옆에 서서 내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왜인지 표정을 보니 평소답지 않게 은근한 미소를 짓고 기뻐보여서, 마유즈미가 불쑥 나타난듯이 저 말을 던지자 카사마츠는 당황한듯이 폰을 주머니속에 넣으며 급구 부인했다. 덕분에 마유즈미는 오히려 놀리고 싶어졌다는게 문제. 전혀 숨기지 못하는 '저는 애인에게 온 문자를 보고 있었습니다' 하는 상대의 표정에 결국 더 묻지는 않았지만 답은 확정된게 아녔을까. 아마 누구라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팀 멤버들의 상황을 가정해보다가 마유즈미는 '누구라도' 에서 살며시 키요시는 뺐다.)


"예쁜 애인가보네."

"그 자식이 이쁘긴 뭐가...헉."

"단순하군요, 카사마츠 주장님."


친구나 가족 일이라고 둘러댈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비죽하게 웃자 카사마츠는 시선을 어디 둘 줄 모르고 말해버린 자신이 분한듯 어금니만 꽉 깨문다. 재밌다니까, 하여튼. 이내 스포츠 용품 가게에 갔었던 타카오와 히무로, 키요시와 만났고 다섯은 적당히 잡담을 나누다가 다음번 모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같은 방향인 카사마츠와 마유즈미는 또 다시 둘만 대화하게 되었다. 저번처럼 카사마츠는 또 마유즈미를 역까지 바래다 줄 생각이었는지 꽤나 오래 동행하게 되었고. 마유즈미는 일단 예의상 두어번 말렸지만 카사마츠는 이 건에 대해서는 완고했다. 네가 가장 멀리서 오잖아.


"그래서, 여자 기피증인 네가 반했을 만한 여자가 이 차원에 존재하긴 했구나. 역시 세상은 살고 볼 일이네."

"... ..."

"2차원이라면 내게 말해도 괜찮아... 동지여. 입덕의 세계는 쉬운 법이니까. 이름만 말해준다면 내가 다음달에 가게 될 동인지 샵에서 손수 관련 자료를 사다줄 수도 있거든. 공식 굿즈부터 옥션에서 찾아 줄 수도 있고. 하지만 3D라면 네게 경의를 표하며 절연하는 걸로 우리의 인연을-"

"임마, 연인은 현실에서만 존재하는거라고. 마유즈미."

"이런, 나에게 그만 현실을 직시하라는 잔소리를 하시는건 아니겠죠? 그건 수백번이나 들었다. 리얼충씨. 다음 크리스마스때는 널 부르지 않겠어. 여기 팀 녀석들에게도 다 말해야지."

"...그건...좀 봐줘."


팀원들에게 말한다는 그 말에 바뀐 카사마츠의 표정은 어딘가 담담하고도, 씁쓸해보여서 마유즈미는 한 순간 더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입을 닫았다. 왜, 뭐 힘든 일이라도 있냐? 카사마츠가 애인이 있다고야 한다면 분명 다들 축하한다고 해줄텐데. 대학교 삼학년, 연애해도 괜찮을법한 나이였다. 마음만 있다면야.

마유즈미는 들어오는 전철을 보며 차가워진 손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입김을 하아, 하고 내뿜으며 카사마츠는 그제서야 조용히 말했다.


"...곧 헤어질 거 같거든."


지금 곧 열차가 들어옵니다, 삐이-

거짓말, 이라면서 마유즈미는 열차에 탔다. 아까 문자 보면서 그렇게나 기뻐하고 있었잖냐. 곧 헤어질 분위기가 아닌걸. 카사마츠는 손을 한번 흔들며 열차 창 밖으로 멀어져갔다. 하여간 사랑이란 힘든 일이다. 제멋대로 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제멋대로 되지 않는것. 왜냐면 상대란게 있으니까. 자신과 다르고, 다른 감정을 품고, 느낌을 가지면서도 그걸 서로에 대한 '사랑' 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 이기적인 존재 두명이서 걸어가는 일이거든.


'물론 내 경우라면 상대가 혼자서 걷고 뛰고 날면서 에너지탄까지 쏘고 있는 거 같지만...'


등을 기대고, 좌석에 앉아 마유즈미는 핸드폰을 꺼냈다. [돌아간다.] 짧은 메세지에 바로 답이 온다. [고생했어요. 기다릴게요.] 마유즈미는 기다리지 말라고는 답하지 않았다.


-


[선배 오늘 또 그팀 연습하러 감까? 언제옴까????] 10:21AM

[말했잖아. 간다고. 밤 전에 온다.] 10:30AM

[저 쉬는 날인데 너무함다! 빨리 와야함다 선배]10:31AM


[선배 이제 끝났슴까? 언제 옵니까?] 4:30PM

[선배 안 끝났슴까?]5:20PM

[끝났어. 뭐하냐.]5:21PM

[선배 기다리면서 뒹굴뒹굴 했슴다(=゚ω゚)ノ]5:22PM

[안어울리니까 쓰지마라 ㅋ]5:23PM

[너무함다 제 사앙인데!]5:24PM

[오타임다 사랑입니다 선배 저녁같이 먹죠?]5:24PM


마음에 드는 새로운 상대가 생길때까지 네 마음은 일단 받아주고, 어울려주겠다는 자신의 약속은 잊을만 하면 또다시 떠올라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 대답은 고백한 키세 말고도 카사마츠 자신이 더 상처받는 말이었다. 키세는 몇번이나 말했다. 선배도 저를 좋아하게 만들겁니다. 꼭이요. 자신은 아직도 키세에게 한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않았다. 그럴 날이 오기 전에 키세가 홀연히-그리고 가볍게 제 곁에서 멀어지길 바랐다.

키세가 쓰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카사마츠의 양심을 언제나 콕콕 찌르고 있었다. 난 널...사랑할 자신이 없어. 키세. 왜 그렇냐고 물어본다면 뭐라 답해야하지.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으면 자신보다 키가 큰 후배는 좋아함다, 라면서 제 어깨에 얼굴을 들이밀어오는것이었다. 관계라는 이름의 줄을 잡고 있는다. 상대가 놓을때까지. 과연 자신이 하는 일이 키세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면서 하는 일인지, 단지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런 쪽의 감정에 서툰 남자가 버스에서 눈을 감았다. 숨이 갑갑해져 키세가 사준 다홍빛 목도리를 조금 끌렀다.


-


"다녀왔다, 아카시."


기다린다고 했으면서 배신했겠다, 내 마음을 배신했겠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게 책상 앞에서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잠든 연인의 모습은 꽤나 귀엽고도 레어했기에 마유즈미는 짐을 두고 아카시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등을 쳐서 깨울까. 머리를 칠까. 아니, 그러다간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테니까 어깨만 잡을까. 여러가지로 고민하면서 아카시, 아카시. 두어번 불러봐도 미동이 없다. 노트북 상황을 보니 미리 해둘 과제를 하다 잠든듯 했다. 철두철미하기도 하십니다. 마유즈미는 마우스를 움직여 과제를 저장해주고, 노트북을 안전하게 끈 뒤 다시 한번 아카시를 깨웠다.


"으음, 음."

"침대 가서 자라, 업어줘야하냐? 이 늙고 지친 선배의 고통을 가중시키지 않아줬으면 하는데 상황을 보니...야."


아카시는 졸린듯한 눈을 반쯤 깜빡거리다가, 마유즈미의 등에 달라붙었다. 안 업어준다니까! 질질 끌고 가는 식으로 마유즈미는 아카시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 눕혔다. 다시 꿈나라로 출국하신 연인을 보자 괜히 얄미워진다. 왜이러지, 평소라면 그냥 잔다면서 냅뒀을텐데. 마음 한켠에서 솟아난 이 감정을 뭐라 불러야 할지 고민하다가 아카시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방에서 나왔다. 마유즈미 선배, 하고 졸림이 섞인 작은 목소리가 방에서 들려왔다.


"어서와요."

"...빨리도 말해준다."

"보고싶었어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방에 들어가 침대 옆에 앉는다. 아카시는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리자 미소지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언제나 반듯한 얼굴을 쓰다듬자 제 손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심심했어? 하고 물어보자 네. 라고 바로 대답이 나온다. 키세한테 오래간만에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쪽도 선배가 그 팀에 가버려서 심심하다고. 아아, 아직도 어울리나보네. 하고 마유즈미는 맞장구를 쳐줬다. 키세 료타라는 녀석은 직접 한번도 본 적이 없고 오직 아카시와 카사마츠의 말로만 들었기에 자신의 안에서는 아직도 환상의 동물같다. 스펙으로 따지자면 아카시 정도의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캐릭터 아닌가.

-그리고 연인 얘기를 하더군요. 기분이 좋아보여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괜히 물어봤겠다. 예, 이십분간 전화기를 차마 놓을 수 없어서. 연상이고 곧지만 상냥하고 때로는 모든걸 자신에게 짊어지게 하려는 사람이라고... 저도 선배 자랑을 하려다가 말았습니다. 그래, 그런건 하지 않는 편이 나아. 슬쩍 한쪽 눈만 아카시가 떠 보인다.


"당신의 모든 것을 아는건 저 만으로 충분합니다."

"모든 것을 알려준 적도, 그럴 마음도 없지만."

"알아낼 각오는 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고."


평소엔 꼬박꼬박 선배라고 부르다가, 가끔 저렇게 무게를 잡고 진지하게 들어오면 마유즈미는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아직도 난감했다.


"선배는 좀 더 당신이 멋지고 대단하고 아름답다는걸 알아줬으면 해요."

"너는 네가 하는 말의 정도를 자각했으면 한다... 초반부터 넌 이 정도 레벨이었지만 내 레벨업은 멀었거든. 그만 자."


아카시는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덮었고, 장난치듯 마유즈미는 그 이불을 끌어내렸다. 그냥 나도 바로 자버릴까, 풀지 않은 짐은 내일 풀어도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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