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전력 60분: 당신의 생일







  마유즈미 상의 생일이 2월 29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라고 침대에 앉은 아카시가 말했다. 마유즈미는 체온계를 물고 있었으니 대답을 할 수 없었고 따라서 눈만 끔뻑거렸지만 아카시는 다행히도 마유즈미의 답 없이도 혼자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년에 한번만 축하해주는건 아쉬웠을테니까. 충분히 이해가 가고, 예상할 수 있을 만한 흔한 정답이었다. 


  마유즈미 치히로는 3월 1일에 태어난 아이였으며, 보통 사람들처럼 일년에 한번씩 생일을 맞이했다. 아이였을 시절엔 좋아하는 장난감을 한두개 선물로 받았으며(놀이공원에 간 적도 몇번 있다) 학생이 되자 가족끼리 외식을 하는 정도로 바뀌었고 약간의 생일 축하 기념 용돈이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취미에 아낌없이 이 돈을 소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자취하게 되어도 마유즈미가의 외동을 위한 생일 축하 방법이 많이 바뀌진 않았지만, 그는 보통 생일이 낀 주의 주말에 본가에 들리곤 했다. 부모님은 별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기에 다행이었다.

생일 당일은 그와 그의 연인의 시간이 되었다.


"열은 그렇게 안 높은데."


체온계를 빼내 바라보던 아카시는 그렇게 중얼거려서 마유즈미는 미간을 찌푸렸다. 꾀병으로 간주되는건 사양이다. 난 지금 아프다고! 속으로만 잔뜩 투덜대던 마유즈미를 내려다보다가 아카시는 손가락으로 살살 미간을 쓰다듬어 풀어준 다음 키스를 해 주었다.


"생일날 이렇게 되다니 운이 없군요."

"살다보면 이럴수도 있는거지."


쉬어버린 목소리가 참 볼썽사나워 그는 입을 금방 닫았다. 어제 시내로 혼자 외출을 다녀온게 화근일까, 아니면 그 전에 밀린 과제를 해치우느라 밤을 샌게 문제일까. 특히 어제는 갑자기 정오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해 우산도 가지고 나가지 않았던 그는 당황했다. 2월 29일의 눈이라니, 교토도 점점 이상기후의 영역에 들어서는거 아닌가? 결국 그는 목도리도 메고 가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며 얇은 코트만을 여미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사실 자신이 추웠던거보다 구매한 부품들이 젖을까봐 걱정했다.) 아카시는 어제 밤 늦게 들어왔고, 그와 껴안고 잠을 자며 어쩐지 덥다고 잠결에 생각했던게 몸살의 징조였었나보다. 자정에 그가 자신에게 생일 축하한다면서 건낸 꽃다발은 아직도 싱싱한채로 식탁 위에 있었다.


"어떻게 했어?"

"뭘요?"

"너, 호텔 예약했다면서."

"취소 했습니다."


일주일 전에 그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미리 언질해놓았던 호텔도 레스토랑도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마유즈미가 또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내밀자 아카시는 옆에 바싹 앉아 손을 잡는다.


"일년에 한번뿐인 생일이 이렇게 지나가게 되어서 아쉬운가요?"

"...딱히, 생일이 엄청 중요한 날이라곤 생각 안 하고."

"제 생일선물을 못 받게 되어서 슬프신가요?"

"그럴리가."


그 예약했다던 호텔 레스토랑의 특선 메뉴라든가 전망대에서 보는 야경은 좀 궁금했지만, 식탐이 많은 쪽도 아니고 상관없다. 그냥 아플때는 누구든지 좀 쳐지는, 그런 흔한 기분이었다. 아카시가 제 뺨을 느리게 쓰다듬자 마유즈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눈빛만으로는 인간은 대화를 할 수가 없다.


"나, 사실 2월 29일생이 될 뻔 했는데 말이다. 어머니가 진통을 오래 겪으시다가 날이 바뀌었다고 말하셨단 말이지. 다행히도 네가 일년마다 축하해줄 수 있는 날에 태어났군."


아카시는 그런가요, 라며 마유즈미를 내려다보다 차가운 물수건을 가져와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이런거 해본 적도 없을텐데 녀석은 모든 일에 능숙하다. 마유즈미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먹은 약 기운이 슬슬 올라오는지 졸려온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카시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은데.


"내가 만약 2월 29일에 태어났더라도, 넌 어떻게 해서든지 일년마다 축하해주지 않았을까. 28일과 1일의 자정쯤을 우리의 29일로 만든다든가."

"좋은 생각이네요."


입술이 포개어져 다음으로 하려던 말은 까먹었다. 그 대신 아카시가 그의 말을 빼앗아갔는지,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매만져주며 말을 이었다. 


"마유즈미 상의 생일 빈도가 헬리 혜성의 주기라고 한다 해도 전 매년 당신이 태어난걸 감사하며, 아니. 매일 그렇게 생각하며 축하드릴 자신이 있어요."


보통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을 허무맹랑한 일에 대해서 자신한다면 그저 허풍쟁이로 보일 뿐인데 어째서 이녀석이 이런 말을 할때면 얼굴이 뜨거워지는걸까. 마유즈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태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절 만나기 위해 태어나 주신거라고, 언제나 믿고 있습니다."


호텔과 레스토랑 예약은 미뤄놨으니 어서 나아주세요. 아카시는 그의 위로 쓰러지듯 껴안았다. 그 무게에 윽, 하고 신음을 흘리면서도 마유즈미는 웃었다. 




참으로 맹랑한, 연하의 연인이었다. 

참을 수 없이 귀엽지 아니한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