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대운동회 F21b <EKKRESIA>에서 발간되는 신간에 대한 안내+샘플입니다
구두예약+통판예약 폼>>>>>
광음조-<光陰物語:광음 이야기> 소설, 떡제본, 53p/5000원 예상
3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광음 이야기(36p)- 모노가타리 시리즈의 ※패러디※
모르시는 분은 현대 흡혈귀 AU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상처이야기'의 흐름과 비슷한 플롯입니다.
※고어한 장면이 약간 있으니 샘플에 밝혀두겠습니다.
※조연으로 키세키즈 외 쿠농 인물들이 추가로 나옵니다
2. 어느날의 미스터리(6p)-일상의 광음조가 학교에서 작은 사건에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가장한 청춘 순정물.
3. 기담(10p)-AU, 요괴와 아카시와 마유즈미의 이야기.
[광음 이야기]
01. 유일한 진실
피를 본 적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식상할까.
그럼 어떤 질문으로 해야할까. 나는 딱히 남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니 결국은 뭐,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겠고. 그럼 저 시시한 질문을 내게 다시 한번 물어보자. 나는 피를 본 적 있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YES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피에 싸여 태어나고, 자라나며 몇 차례 부딛히고 넘어져서 피가 나며 일상 생활에서 꽤나 흔치 않게 피를 보게 된다. 하지만 내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그러한걸 물어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좀 더, 그러니까…
당신은, 피 웅덩이에 누워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으음, 그래.
여기까지 사고가 전개된 이상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 이 질문의 답도 아까와 같다. 나는─마유즈미 치히로는, 피 웅덩이에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다. 언제냐면 방금 전, 그래서 그게 지금 이 구토와 현기증에 대한 대답이다. 이렇게 지독한 구토를 했던건 장염에 걸렸던 삼년 전쯤 이후로는 오랜만이다.
"우욱…우웩…엑, 켈록…커억…."
뿌옇게 흔들리는 시야는 심장 박동 소리와 어울려, 도무지 침착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장에서는 더 이상 나올게 없어 신물만 뚝뚝 입 밖으로 떨어진다.
그도 그럴게 모든 시각, 촉각, 청각이 충격을 받았다. 골목길 한 가운데가 온통 새빨간 피 범벅이었다. 지독한 죽음의 냄새가 짙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책에서도 잘 나오지 않을 장면이, 명백히 현실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더러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 책에서 나와 봤자 먹칠 된 피겠지만.
분명 그 정도의 일러스트겠지만.
그건 명백히 현실이다. 사람이, 한 가운데에 누워서─
아…그만둘까. 아니다, 좀 더 떠올려보자. 방금 전 교토의 골목길 한 중간에 피범벅 사이에 한 사람이─
그러니까,
사지가 절단된 채로 있었다.
절단된 사지는 그 자리에 없었다.
머리는 원래 붉은 건지 피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둠 속에, 가로등 아래에 괴기스러운 오브제처럼 텅 빈 눈의 존재가 있었다. 그저 그것이 시체였으면, 지금 내가 겪은 이 감정은 반 정도로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어버린 내가 그의 시야에 들어오자 그가 말했다는 것이, 악몽 같은 일이었다.
사지가 잘려서 얘기할 수 있는 인간 따위 존재하지 않잖아.
"…려줘."
원래는 영롱하고, 그 어느 것보다 고귀했을 눈동자가 희미해지며 이쪽을 바라본다.
그런 존재가 살아가며 절대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 말을, 내게 청한다.
갈구한다.
"살려줘…."
내가 그의 기묘한 상태를 다 파악하고, 저절로 구토감이 느껴져 얼굴을 찡그리며 뒷걸음질 하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팔이 없는, 어깨를 버둥거리면서 떼를 썼다. 마치 아기 같았다. 막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가지마, 가지 마! 제발, 제발 부탁이야, 살려줘, 살려줘, 아파, 아파…아파…죽고싶지 않아…난…! 아카시 세이쥬로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아, 아파, 아파…!"
입을 가리고 힘이 풀려 꼬이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십 여분을 달리고 달렸다. 그 강렬한 인상은 한참동안 사라지지 않아, 나는 인파가 많은 거리에 도착하고서도 한참을 서서 숨을 골랐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스스로에게 던진 첫 질문이 저것. 이제 나머지 질문도 던져볼까.
나는 그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02. 거짓의 시작
답은 당연히, 이성적인 논리로 판단해 본다면 NO.
다만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 한 가지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방금 서점에서 사와 한 손에 들고 있었던 라노베가 들어있는 종이봉투가, 정신이 든 이제 와서 확인해보니 사라져 있었다는 점. 짧은 신음과 함께 어디에 두고 왔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한 곳 밖에 없지, 그 공포의 골목길이다. 놀라 뒤돌아서 뛰며 손에서 놓친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왔나 보다.
그냥 포기하고 돌아갈까. 라노베 한 두권이라 해봤자 약 1000엔. 내 목숨이나 정신적 안정을 위한 값으로는 그닥 비싸지 않다. 또 그 광경을 본다면 아무리 진정된 나라고 해도 고대의 괴기 생명체를 만나 미쳐버린 인물들처럼, 광기에 휩싸여 뭔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을거란 생각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결국 후들대는 발걸음은 내가 필사적으로 온 길을 되돌아갔다. 지금쯤이면 죽어 있을거야. 막 물에서 나온 물고기(그를 이렇게 비유해 조금 미안해졌다)는 펄떡이다가 죽으니까, 사지가 잘린 인간도 분명 조금은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아까는 있었던 거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스스로 하면서.
아아, 역시 멋지게 기대를 배반했다.
피 웅덩이 안의 그는 작게 흐느껴 울고 있었다. 처량함의 극치이다. 그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해도, 우는 그를 보자마자 무언가 심하게 잘못됐다는걸 느꼈다. 분명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랬을거다. 누굴 향해 하는건지 몰랐던 그 애원하는 부탁은 마치 꿈만같았다.
"어이…."
나는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내 책 봉투를 주울 생각도 못한 채로 우두커니 그를 바라보았다. 핏빛 눈물이, 그의 볼을 따라 또르르 톡 하고 웅덩이에 떨어지는 것만 들렸다. 앙다문 입은 아까처럼 내게 소리치고 있지 않았다. 눈동자는 아까보다 훨씬 공허하고, 비어있다. 눈물이 나오는걸 몰랐다면 정말 죽었다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이봐."
뭐 하는거냐, 마유즈미─라고 스스로를 말릴 새도 없었다. 그저 몸이 반응했고, 나는 느릿하게 그에게 다가가 피 웅덩이 옆에 앉았다. 시선이 겨우 마주치고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 그의 양 쪽 색이 다른 눈동자 안에 내 인영이 들어서자마자 다음 장면은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달싹이는 입술로부터 나오는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 윗 몸을 숙이자 단숨에 콰직, 하고.
콰직.
콱.
목덜미에 느껴지는 뜨거운 고통은 몇 초 뒤에나 인식했고, 목소리는 차마 나오지 않았다. 뭐야, 이게 뭐, 뭐지, 뭐냐, 아, 아아, 아. 아파, 아파, 아, 아악, 아, 아아아, 아아아아…나와 그의 떨리는 몸이 밀착해 서로의 심장 소리가 섞이자 모든 감각이 서서히 멀어져갔다. 모든 사고와 인지와, 시야가 저 편으로 멀어져 간다. 나, 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처음 느끼는 감각.
─그날 나는 인간이 아닌, 피 웅덩이의 무언가에게 잡아 먹혔다.
[어느 날의 미스터리]
다행이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자신에게 놀라 한순간 숨을 짧게 멈추었다.
⁂
마유즈미 치히로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건,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다. 표정을 숨기는 편은 아니지만 애초에 그걸 남이 눈치 채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라고 아카시 세이쥬로는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드러내는 명백한 혼란은 로커룸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갈무리되지 않아 보였다. 생 날 것의 감정이었다. 이를 꽉 악문 옆모습. 찌푸려진 미간.
"…치히로?"
로커 안을 보며 부동 자세로 있던 마유즈미가, 겨우 몸을 돌려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우물거리는게 보였다. 아마 말할까, 말하지 않을까 중 고민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미 주변의 분위기를 보아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걸 느낀 마유즈미는 짧게, 그가 당황한 이유를 말했다.
"도난당했어."
⁂
"세이쨩, 정말 다들 귀가시켜도 돼?"
"그래."
"하지만…."
레오는 흐음, 하고 짧게 신음하며 걱정스럽다는 듯이 아카시를 향해 말을 이었다. 뒤에 서 있는 하야마와 네부야도 귀가해도 된다 했지만, '재밌어보이니 남는다.'라고 말해 여기에 있을 뿐 나머지 1군 선수들은 아카시의 말에 따라 모두 집에 가버린 참이었다.
"부원들 중에서 용의자가 있을 가능성은 없는거야?"
"레오."
아카시는 더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뒤돌아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뭐, 세이쨩이 그렇다면야~ 하며 레오는 머리칼을 만지작거린 뒤에 까불거리며 떠드는 두 바보 옆으로 가 어깨를 한대 쳤다.
"그럼 치히로, 다시 한번 제대로 상황을 되짚어볼까. 부원들도 모두 갔고."
텅 빈 제 1 체육관 안에서 강단있게 울리는 목소리. 체육관 한 구석에 벽을 기대어 앉아 있던 마유즈미는 푸욱 한숨을 쉬다가 어디로 향해야할지 모를 원망의 눈빛을 담아 중얼거렸다.
"또?"
"아까는 부원들을 보내도 될까, 에 대한 것만 알아냈으니까."
"오늘 안에 찾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는데."
잔뜩 부루퉁하고 삐죽거리는 그 말에 아카시는 오히려 미소를 지어보였다.
"주장으로서, 부 안에서 일어난 일은 책임질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있으니 걱정 마."
"쳇…."
혀를 차는 소리 뒤에는 분명 속으로 아카시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고 있을 법한 오라를 팍팍 내뿜은 뒤에야 마유즈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하기나 해 보자고. 기숙사 들어가도 할 것도 없고.
아무튼 이 주장님이 탐정이라니, 경기 때 예리해지고 흉흉해지는 눈빛은 지금도 발하고 있다는걸 마유즈미는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아직 알지 못했다.
⁂
연습 후에 로커 문을 열었더니, 항상 놓여 있던 숄더 백이 사라져 있었어. 항상, 은 아닌가. 선수복을 넣어두기에 쓴 날은 기숙사로 가져가서 세탁하곤 하지. 아무튼 연습 전에는 있었어, 분명히. 중간 쉬는 시간에는 몰라. 로커 룸에 아예 가지 않았거든. 그치만 부원들 대부분 중간 쉬는 시간엔 거기 안 가잖아. 그래…너도 오늘 중간 쉬는 시간에 로커룸에 간 녀석은 없다 했으니까, 말이지. 애들을 다 보낸거 같고.
그 외에 내 로커에서 사라진건 없어. 가방 안에 있는건 예비 물병하고 유니폼이 다야. 금전 관련이나, 내 신변과 관련된건 없어. 가방 안쪽엔 펜으로 내 이름을 적어두긴 했지만 겉 보기에는 어느 녀석 것과도 다를게 없겠지.
…더 말할 게 있나?
[기담]
01.
낯선 장소에 가는 건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새 거래처나, 출장지 모두 반기지 않지만 그 낯섬과 지금 내가 맞닥뜨린 낯섬은 매우 다른 것이긴 하였으니, 결국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저 내 앞에 있는 이 곳이 매우 기묘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지금 멈춰 서 있는 곳은 낡은 헌 책방 앞. 눈여겨 보지 않으면 주위의 다른 가게에 눈이 멀어 그냥 지나쳐버릴 수수하고, 겉 벽 장식은 전등 하나 이외엔 아무것도 없고 조그만 간판 하나만 달려있는 곳. 수십 년동안 이 거리를 지나다녀봤지만 한 번도 이 가게가 문을 연 건 본 적이 없으며, 가끔 주변 상인의 입소문에서만 들어왔을 뿐이다. 영업 신고를 당한 곳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다, 사람이 안에서 목을 매달았다는 둥, 새벽에 거기서 발이 없는 사람이 나왔다는 둥… 하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밝혀진 건 없었다. 일단 헌 책방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21세기의 최첨단 시대에 귀신 얘기 같은 거에 신경쓸 사람도 없고, 명의를 파헤쳐보거나 그럴 귀찮은 짓을 할 이유 또한 없고. 보통 사람들이 엮일 일은 절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헌 책방의 앞에 서 있었다. 다름 아닌 내 자의로.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날 보고 바보 같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꿀꺽, 하고 침이 마른 목을 넘어간다. 고작 상인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믿거나 말거나 할 얘기 때문에 야근 후 자정이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각에 여기에 왔단 말인가. 주변 가게들은 다 문을 닫은 지 오래이다. 하지만 이곳의 작은 전등은 기묘하게도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의 작은 간판을 본 순간 나는 떠돌아다니는 소문 하나가 맞았다는 걸 알아챘다. 거기, 사실 헌 책방이 아니에요. 간판에 다른 게 써져 있었는데, 뭐더라? 흥신소도 아니고.
[해결사]
헛웃음이 나왔다. 해결사라니, 그런 직업이 남아있었나. 정말 운영하긴 하는건가.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노크를 했다. 초인종이 없으니─보통 가게니 당연하긴 했다─ 이럴 수 밖에 없었는데, 안쪽에서 반응이 올지 오지 않을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과연 나올 것인가. 몇 분간 기다리다가 나는 한번더 리듬에 맞춰 노크를 했다. 똑똑똑. 똑─똑─똑.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아이처럼. 그리고 누군가가 나오는 기척이 전혀 들리지 않아 몸을 뒤돌아 돌아가려는 찰나.
"─안녕하세요."
예상을 깨고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왔다. 너무나도, 평범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보통의 가게처럼.
노르스름하고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그는 먹색 기모노를 걸친 채, 나를 맞이했다. 내가 놀란 부분은 사람이 나왔다는 그 자체보다는, '그가 나왔다.'는 걸 내가 한참 뒤에 알아차렸다는 것. 그만큼이나 그는 보통 인간보다 훨씬 존재감이 희미했다. 눈치 채려고 의식하지 않는다면 마치 없다고 느낄 정도로. 내 표정이 기묘하게 변하는게 익숙한지 남자는 가만히 날 보다가 시선을 회피한다. 그 행동에 자신의 무례함을 이제야 알아채 사과했다.
"…실례했습니다."
"아뇨. 무슨 일로?"
청년의 목소리와 태도는 싹싹하고 정중하기보다는 무뚝뚝하고 사무적이라, 나는 꼭 회사 사원들 중 한명을 보는 거 같았다. 요즘 20대들은, 웃음기가 없단 말이지… 내가 할 말을 바로 잇지 못하고 그저 돌처럼 서 있자 그는 한숨을 쉬고,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오세요. 일이 있으셔서 오신거 같으니까."
그리고 그는 내게 뒤돌아, 무언가를 중얼거린거 같았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그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나는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랐다. 발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조용히 내부를 걸어갔고, 헌 책방이라고 믿었던 가게의 안은 생각 이상으로 넓었으며 시대를 거슬러 온 듯이 고풍스러웠고 방이 많다는걸 알게 되었다. 수트 차림인 내가 어색해질 정도로 이상한 나라에 온 거 같은 기분이군. 고급 요정 같기도 하고. 왜인지 모르게 목이 갑갑해진 기분이라 넥타이를 끌러내자 이내 응접실일 듯한 곳에 도착했다.
"앉으세요."
그가 말한 대로 털썩 가죽 소파에 앉자, 나는 디귿자 모양의 자리 중 내가 앉은 자리 오른편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걸 알아챘다. 모란이 그려진 흰 기모노 차림의, 붉은 남자. 옷만 보고선 솔직히 조금 웃을 뻔도 했다. 나이는 어느 대일까. 먹색 청년과 비슷한 듯 하지만 좀 더 어려보이기도 했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잘 알 수 없었다. 뭔가 정말 '인외'의 존재가 아닐까, 하는 듯한 신비함 또한 품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만나보기 어려울 타입이겠다, 라고 나는 금방 깨달았다. 누구든지 이 자를 보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겠지. 궁금했지만 말 걸기가 쉽지 않았다.
아까의 흐릿한 인상의 청년과는 또 다른 존재감을 피력하는 그는 내가 와도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로 그대로 하고 있던 걸 이어 하고 있었는데, 고급스러워 보이는 장기말과 장기판으로 이루어진, 홀로 두는 장기였다. 흰 기모노 소매가 정갈하게 펄럭이며 기보에 따라 말이 옮겨질 때마다 나는 그 손짓에서 점차 눈을 떼지 못했다. 이내 조용히 음료를 가져온 먹색 청년이 날 부르기 전까지 나는 내내 장기판만 보고 있었다.
"…손님."
"아아, 네. 저기, 죄송합니다."
"아뇨."
역시 대화를 능숙하게 이끌어 나가는 편은 아닌지 청년은 그저 시선을 바닥에 내리고, 자기 몫의 음료만 마셨다. 가져온 음료는 이 인분으로 내 것과 그의 것. 장기를 두는 청년의 것은 없었다. 나는 잔을 든 채로 가만히 생각했다. 정말로 해결 될까, 해결 되지 않더라도 어딘가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허무맹랑한 소문을 들어 여기까지 온게 아닐까 싶었다. 제일 먼저 물어봐야 할 질문은 이거였다.
"여기, 정말로 해결사가 맞습니까?"
"네."
허탈하리만큼 짧은 긍정. 맥이 풀려 컵을 소리 나게 탁상에 내려두어도 둘은 날 바라보지 않는다.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나는 또 다시 실례했다고 말한 뒤 떨리지 않게 조심하며 다시 말했다. 해결, 해 줄수 있습니까? 무엇이든지? 바보 같은 질문이었지만 왜인지 이들이라면 해 줄수 있을 것만 같은 오묘한 기분이 들어서.
"바란다면."
청년은 그 이상으로 말하지 않고, 어딘가 텅 빈 듯한 눈을 돌려 붉은 쪽을 흘겨보다가 다시 바닥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잠시 동안 마주쳤지만 더 입을 여는 일은 없어서 나는 또다시 먼저 입을 열어야만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절박한지, 어째서 내가 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으며 여기 왔어야만 했는지. 부디 출구를 누군가가 찾아주길 바라며.
NOT APPLE DREAM, 만화/적먹/후기 포함 16p 예정/2000
노토토 3인방과 아카시가 대화하는게 반, 아카시와 마유즈미가 대화하는게 반. 주로 아카시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적극적이지 못한 아카시가 나옵니다.
샘플은...완성...되는대로 올려놓겠습니다...마감중입니다...ㅠㅠ...펑크날 수도 있어요...
이외에 디페스타에서 발간했던 먹ts적, 광음조 소설 구간 2권에 대한 구두예약이나 통판도 받습니다
샘플>>http://ekkronig.tistory.com/entry/0804
현장에서 구입하신 선착순(구두예약, 현장구매 상관없이) 15분께는 전프레로 하트뱃지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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