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전력 60분-여행
AU주의/적(오레)X먹X적(보쿠) 주의
남자는 끝없고 뜨거운 사막을 그저 걸어가고 있었다.
분명 여행이라기에는 가혹한 여정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얼마 못 가 쓰러질 거 같은 비척거리는 걸음걸이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휘몰아치는 모래 폭풍도, 그저 내리쬐기만 하는 야속한 태양도 그런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태어나서 마을 밖으로는 멀리 나가본 적도 없는 그에게는 이건 영겁의 고통이라고 할 만 했다. 지옥의 구렁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는듯한 사막에서, 다음 발자국을 내딛었다.
★
「헤에, 왕궁으로 간다고? 엄청나네, 그거─」
오아시스 주변에서 처음으로 만난 흑발의 청년은 말이 많았다. 남자는 그를 만나고 나서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의 신상 정보와, 이십여년간 살아온 터전인 마을과, 그의 친구인 신…어쩌고라는 인물에 대해서 좔좔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알게 되었다. 아무튼 매사냥꾼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야자를 남자에게 나눠주며 모닥불에 앉아 같이 육포를 씹었다. 과묵한 남자가 재미없지도 않은지 계속해서 쓰잘떼기 없는 잡담을 한다.
「왕이라는 사람은 나도 본 적이 없지만 분명 엄청난 사람이지 않겠어? 그런 사람을 보러간다는 당신도 참 대단한거 같네. 뭐, 아직도 한참은 걸어가야 하지만 말야. 그나저나 낙타도 없어?」
육포를 다 씹고 나서야 그렇다고 대답하자 힘들겠다며 격려의 소리를 해 준다. 상대가 혼자서 제 얘기를 잔뜩 했으니 이제 자신의 차례인가 싶었지만 청년은 이제 잘 시간이라며 재빨리 양가죽 침낭에 들어가버렸다.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남자는 모포를 꺼내 덮고 잠에 들었다. 중간에 깨지도 않고 동생의 꿈을 꾸었다.
★
「그렇게 가다간 죽어. 죽은 인간은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고.」
눈을 겨우 뜨자 처음 보는 텐트의 안이었고, 정신이 든 남자는 벌떡 일어났다. 결국 걸어가다가 사막의 한 가운데서 지쳐 쓰러진 모양인데 운이 좋게도 그 곳을 지나가는 상단의 눈에 띄였나보다. 만약 운이 없었다면 그대로 사막의 시체가 되었겠지. 강단있어보이는 짧은 머리의 사내가 자신에게 해 주는 말을 들으며, 남자는 물을 잔뜩 마시고 겨우 자신의 행선지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왕궁?」
「용케 여기까지 왔네. 사막을 혼자 걸어온거야?」
사내 옆의 또 다른, 눈썹이 짙고 인상이 좋아보이는 키 큰 사내가 젖은 수건을 건네며 물어봤다. 상단은 곧 다시 떠난다고 했으니 오래 신세를 질 수는 없다. 남자는 그렇다며 짧게 대답했다.
「애초에 왜 가는건데?」
「동생이 아파.」
뭔가 더 물어보고 싶어하는 미심쩍어하는 얼굴로 사내는-나중에 떠나기 전에 알아보니 상단의 주인이라고 했다-힘 없는 목소리의 남자를 바라보다가, 텐트에서 나갔다. 남아있던 사내는 육포와 물, 그리고 새 신발과 모포를 건내주며 무사히 여행을 마치길 바란다고 친절하게 말했다.
★
「큰 걱정을 가지고 있군요.」
기나긴 사막을 겨우 통과하고 나서 겨우 한 마을에 들어서자, 길거리에 앉아있던 점쟁이가 남자를 향해 말했다. 한 눈을 머리칼로 가린채로 눈물점을 가지고 있는 젊은 점쟁이었다. 멍하니 서 있던 남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점쟁이가 낡은 타로카드를 꺼내어 섞고 내밀었다.
「세 장. 복채는 은화 한 닢.」
망설임없이 남자는 카드를 세 장 뽑았고, 점쟁이와 함께 자신이 뽑아낸 그 오묘한 그림속에서 의미를 읽어내려고 했다. 아마도 읽어낸건 그가 아니라 상대였겠지만. 점쟁이는 잠시 후 카드를 하나 하나 짚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당신은 크나큰 사건으로 인해서 무작정 여행을 시작했고, 여러 고난을 겪었네요. 지금도 여행을 하는 중이고 당신의 여행 끝에는….」
아마도 미래, 를 가리킬듯한 마지막 카드 한 장을 보며 점쟁이는 말을 잇지 않았다. 남자는 타로카드의 밑에 적혀진 카드의 이름이라도 읽으려고 했지만 장식되어있는듯한 꼬부랑 글자라 읽을 수가 없었다. 점쟁이는 이내 몸을 젖혔고, 복채를 받지 않을 테니 가라고 손짓했다. 남자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점쟁이는 그저 허하게 웃었다.
「제 실력으로는 읽을 수가 없네요. 미안합니다.」
남자가 힘 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나서야 점쟁이는 천천히 제 카드들을 한장한장 보며 도대체 어디서 덱에 없던 카드가 나타났는지 한참동안 고민했다.
★
「당신이 문지기에게 말하길 폐하께 볼 일이 있으시다고 하셨더군요.」
분홍 머리칼의 소녀를 따라 남자는 한참동안 커다랗고 흰 궁전의 홀을 걸어갔다. 단순한 하녀같아보이지 않는 그녀는 수정으로 장식된 촛대를 들고 남자를 안내했다.
신전을 닮은 듯한 왕궁의 내부는 매우 서늘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랜 여행으로 인해 꾀죄죄한 자신이 들어오면 안 될 듯한 금역같아 보이기도 해 남자는 제 손과 소매로 얼굴을 몇번이나 비볐다.
「평소에 그 분께선 일반 평민 분들은 만나주시지 않습니다만… 오늘 폐하께서, 한 남자가 올 것이니 이리로 안내하라고 말씀하셨기에.」
소녀의 낭랑하고 또렷한 목소리만 홀에 울렸다. 자신의 발소리는 나지도 않는다. 곧 왕을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아무리 그라고 해도 심장이 뛰는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남자는 그 말에 망설이지 않고 커다란 문을 열었다.
★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죠?」
「… …아카시.」
「네. 그래서 그와는 행복하게, 지냈습니까?」
붉은 비단으로 감싸여져 있는 옥좌 위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자신의 연인과 똑 닮은 얼굴. 다 알고 있다는 눈빛. 하지만 그에게서 받을 수 있는 건 오직 싸늘한 경멸과 멸시, 질투 뿐.
마유즈미는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바닥에 엎드렸다. 옥좌 위의 아카시는 그의 행동에 그저 코웃음을 쳤다.
「부탁이야, 그를…살려줘.」
「싫습니다.」
「…왜…─」
「내가 왜?」
불같은 분노를 삼키는듯이 꾹꾹 눌러담은 대답을 하는 아카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유즈미가 있는 아래로 내려걸어갔다.
「내 복제품이 망가졌다고 고쳐달라고 비는 사람에게 줄 자비는 없습니다.」
「아카시, 제발….」
「하아, 당신 입에서 제발이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우습기도 하지.」
왕은 허리를 굽혀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세웠다. 며칠간을 먹지 못하고 이 곳을 향해 멀고 먼 여행을 계속해온 그는 볼품없이 말라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바스라질거 같은 모습이었다. 왕궁에 있었을때는 그나마 청초하다고 해 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왕의 비 자리를 거부하고, 제 복제품과 도망쳐 살아보니 어떠셨습니까?」
「…난….」
「난 당신처럼 오만한 사람을 또 본 적이 없어.」
「아카시… 그는, 」
마른 입술에 겨우 침을 바르고서야 작게 기침한 뒤, 마유즈미는 말을 이었다.
「그는 복제품이 아니야, 너도 알잖아.」
그의 말에 아카시의 얼굴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지고 마유즈미의 멱살을 잡았다. 으르렁대듯, 그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이라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십시오. 마지막 기회야. 당신이 돌아가지 않고 여기 있어준다면, 사람을 보내 '그'는 고쳐줄 수 있어.」
마유즈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뿐이었다.
★
「…치히로?」
누군가 들어오지 않은지가 한참 된 문의 경첩이 열리는 소리에 침대에 있던 소년은 고개를 돌렸다. 모래와 먼지를 뒤집어쓴 남자가 희뿌연 시야 안에 겨우 보였다.
「여행에서, 돌아와줬구나.」
남자는 그에게 다가가 바로 껴안았고, 품에 안아 그를 토닥이다가 입을 다시 열었다.
「괜찮아.」
그리고... 라면서 소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그를 가혹한 여행에 보낸 것은, 자신이 쇠약해짐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이기심이었을 뿐이다. 자신또한 '아카시'니까, 이러할 결말을 알고 있었다.
씁쓸한 입 안에서 피 맛이 났다.
「…네 책에서 봤어, 여행에서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이 말을 하는거래.」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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