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히로에게. 


저번 내 편지에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보내지 말라는 말은 없었으니 마저 보낼게.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우체부가 제대로 배달은 해 줬을지도 모르는 상태라 좀 웃기군. 답답할 지경이야. 


안녕, 치히로. 늘어지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 무척이나 더운 여름이네. 작년에 방학 훈련동안 힘들어했던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어. 더위에 약했던거 같은데 몸 관리 잘 하고 있겠지. 농구를 그만뒀다고 해도 건강에는 부디 유의해줘. 


도쿄는 교토보다 더 더우려나. 어디나 다 덥겠지만. 이번 해의 폭염 수치는 작년의 기록을 넘어섰다고 하는군. 계속 걱정하고 있어. 혹시 방학이여서 교토로 다시 내려와있어? 그럴 일은 없겠지. 아무튼 이 편지는 도쿄의 치히로의 자취방으로 배송될거니까 걱정하지는 않겠어. 거처를 옮겼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고. 언젠간 받게 되겠지. 


편지란건 저번에도 말했지만 쉽지가 않네. 마주본다면 할 말이 더 생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지울 수 있다는건 다행일까, 나 답지 않게 얼빠지거나 멍청한 소리를 한다면 바로 지워버릴 수 있으니까. 


사실은 '치히로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만 이렇게나 작성하기 어려운거 같아. 지금껏 다른 편지들은 이렇지 않았어. ...써본적도 없지만. 그러니까, 내가 편지를 보냈던-그리고 보낼 상대는 치히로가 유일하다는거야. 좀 더 기뻐해줘도 돼. 웃지도 않을 네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그 표정도 좋아해. 보고싶어. 


답장을 간청하진 않겠어. 그건 네 자유고, 네 선택이라고 생각해. 이번에도 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다음번 편지를 또 쓰게 되겠지. 너에게 연락할 방법은 이 뿐이란걸 아니까. 메일? 전화? 무엇이든 기록이 남아. 그리고 그는 영리하니까 금방 다 눈치챌 수 있을거야. 편지를 쓴다는 이 방법도 사실 완벽하진 않지, 그렇지만 조금은 뭐라고 해야할까, 아날로그적인 연정 표현 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도 목소리를 듣고 전화하고 싶어, 하지만 여건이 허락해주질 않는게 아쉬울 뿐이야. 


언젠가는 분명 다시 직접 마주할 날이 올거고. 그래, 곧이야. 머지않아 난 나갈 수 있음을 확신해. 

그 날까지 부디 평안하길. 사랑하는 치히로. 


-추신, 그리고 내가 아직 살아있다고 믿어줘. 


아카시 세이쥬로. 



마유즈미 치히로는 제게 배송되어온 두번째 붉은 봉투의 편지를 읽고 깊게 한숨을 내쉰 뒤에 저번과 같이 서랍 깊숙히 집어넣었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진짜같았고, 진짜라고 하기에는 허무맹랑한 소리 같았다. 역시 누군가가 친 장난이 분명해,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편지의 필체는 그가 알고 있는 아카시의 필체와 거의 동일했다. 단정하고, 수려한-자신만을 생각하면서 썼을 그 글씨들. 


전화해서 물어보기엔 그랬다. '아카시 세이쥬로'와 자신은 그 은퇴식 날 이후로 연락을 단 한번도 취하지 않았다. 졸업식날 연사를 하며 무대에 서 있는 녀석을 본게 아마도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애정이 듬뿍 담긴 의미 모를 편지들이 오다니. 지난번꺼는 장난으로 치부한다고 해도(하필 첫번째 편지는 입학을 축하하며 만우절에 가까운 날에 작성되었다!) 이번건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마유즈미는 한참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제 전화번호부를 보고 깨달았다. 새 것으로 바꾸느라 아카시의 연락처가 없었다. 


'바보같긴...' 


과연 이 의미심장한 말들의 내포한 뜻은 뭘까, '사랑하는 치히로'라니 도대체 언제부터? 머리에 쥐가 날 거 같은 마유즈미는 다시 한번 편지들을 읽어내리다가 침대로 던져버렸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고 믿어줘, ...라. 한번도 죽었을거라고 생각한 적 없다고. 

맹세코 단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