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전력 60분 참여- 주제: [처음]



【[요시와라 상, 나는...!] 

[미안, 사야토 군.] 

그 순간 요시와라 상은 내 어깨를 잡고 고개를 가까이 하여, 붉은 입술을 내 입술에 포개었다. 달콤하고도 은은한 그녀의 향이 느껴져왔다가 이내 멀리 사라졌다. 세계의 문이 닫히려는 순간 나는 그녀와 첫키스를-】


"마유즈미 선배." 


주말의 한적한 오후다.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아있고, 할 것도 딱히 없기에 나는 앉아서 신작 라이트 노벨의 끝부분을 읽는 중이었으며 아카시는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워있는 나름 연인다워보이는 역할을 수행중. 조용한 가운데 갑자기 그가 나를 부르자 나는 미간을 슬쩍 찌푸리고 책을 덮었다. 한창 좋을 때 끊긴. 


"왜." 

"키스, 해도 됩니-" 

"아니." 


다 듣기도 전에 '키'만 듣고 대답해버렸다. 내 반응속도에게 박수. 다시 라이트 노벨을 펴서 얼굴을 가리자 누군가의 따가운 눈총이 느껴져, 한숨을 쉬며 책을 내렸다. 적이 곧 돌진해온다는걸 알고 있다. 패턴 청, 습격입니다-! 절대로 막아야 한다! 


"읍." 

"안된다니까." 


내 쪽을 째려다보며 입이 손으로 막힌 아카시를 보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손으로 밀어내자 끙끙거린다. 조금, 떼쓰는 강아지같아보여서 웃음이 나올뻔 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그렇다, 우리는 사귄지 3개월이 넘도록 키스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내 고지식한 고집 때문.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손 잡기와 포옹 이상의 접촉은 하지 않겠다.'-연애 3일차부터 시행된 철칙 아래에 희생된건 전적으로 아카시였다.

 

아마도. 


"성인이 되기까지는 너무 멀어요." 

"눈 깜짝할 새에 어른이 될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하아, 이대로라면... 말라 죽습니다." 

"네가 그런 표현을 할 줄은 몰랐어. 아무튼 난 결심했으니까." 


고개를 돌려 책장에서 새 책을 찾자 뒷통수에 시선이 계속해서 박혀와 뜨거울 지경이다. 구멍이 뚫릴 정도다. 사실 이 녀석의 생일쯤에는 선물 정도론 가볍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어야 한다. 연애 첫 날부터, 매번 중얼거렸던 말이다. 


[고민상담] 동성인 후배랑 사귀기 시작했는데 스킨십이 두렵다 [연애] 

1. 익명씨 

말 그대로다. 

남자랑 키스나 그 이상의 것을 한다는게 상상이 안가. 

그런 내 자신을 상상할 수도 없고 후배가 나랑 그런걸 한다는게 상상이 안가 

오해 마, 상대방을 싫어하는건 아니니까 


2. 익명씨 

우호! 호모옷 ^q^


3. 익명씨 

포옹이나 손잡기는 괜찮아? 


4. 익명씨 

남자끼리 그런거에 거부감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는데 사귀기 시작한걸지도 

너무 억지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 


5. 익명씨 

>>2 호모다 어쩔래 

>>3 응 이상하게도 

>>4 그런가, 일단 두고보기로. 


...아니, 지금 이럴때가 아니다. 정신차려라, 마유즈미. 내가 스킨십-정확히는 키스-을 피하는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하지만 아카시를 어떻게 해결하지 않는다면 큰일이 날 거 같아서 나는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임시방편이라도 내놔야 저 형형한 눈빛을 사그라뜨릴 수 있지 않겠는가. 


"자." 


이게 뭐냐는듯이 아카시는 내가 내민 명함 크기의 종이를 한참동안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방금 프린터로 뽑아낸 종이에는 빈 원 다섯개가 그려져 있었고, 마지막 원에는 KISS! 라고 써져 있었다. 


"유추해내기가 어렵군요." 

"쿠폰이야, 쿠폰. 넌 커피 체인점같은데를 안 가니까 모르는거겠지. 착한 일을 다섯번 하면 상으로 키스를 주마." 

"헤에. 첫키스가 되겠네요..." 


흥미롭다는듯이 마지막 원을 덧그리듯이 검지로 문지르다가, 아카시는 나에게 물었다. 착한일의 기준은요? 왜인지 교사가 된 기분으로(교직자의 길은 전혀 걸을 생각이 없습니다만) 나는 전에 라이트 노벨 <시계장치의 사과와 벌꿀과 여동생 3권>초회판 부록 사은품으로 받았던 캐릭터 도장을 서랍을 뒤져 찾아내며 대답했다. 


"그거야 내 마음에 들면 되는거 아니겠냐." 


아카시가 당장이라도 당신의 마음을 Catch!해서 다섯개를 다 채우겠다는듯이 종이를 바라봐 조금 겁이 난 나는 저녁을 준비하겠다고 주방 쪽으로 다가갔으며, 그가 조용히 혼자 중얼거리는건 듣지 못했다. 스스로의 머릿속이 복잡하기도 했고. 

-어쩔 수 없잖아. 난 겁쟁이인걸. 이렇게 결계를 치는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진짜로 다섯개를 다 채우면 키스는 어떻게든 짧게 해주고 끝낼 수 있겠지. 오늘도 그렇게 안일한 생각으로 첫 키스가 없는 하루를 보냈다. 



"마유즈미 선배, 오셨어요?" 


학교가 끝나 돌아오자 나보다 먼저 와서 입이 떡 벌어질정도로 내 자취방을 깨끗히 정리해둔 아카시에게는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어줄 수 밖에 없었다. 제 아무리 무시를 잘 하는 나라도 이걸 무시한다면 곧 그는 다이아몬드 검을 들고 드래곤의 심장이라도 가져올 거 같았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걸레를 든 채로 생긋 웃는 얼굴은 무시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라고 해야할까. 도장이 찍힌 후 키스 쿠폰 종이를 지갑에 집어넣고 휴식하는 아카시를 곁눈질하며 나는 들키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이미 녀석은 다 알고있을지도 모른다. 

왜 내가 키스를 거부하는지. 

졸업식날 고백받아서 연인이 되고, 포옹하고, 손을 잡고, 동거아닌 동거를 해도 왜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것을 거부하는지. 밀쳐내는지. 

...최악이다, 깊게 생각하면 할 수록 아카시가 그 동안 내 일방적인 거부를 듣고서도 단 한번도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았던 생각나서 반동으로 자기 자신이 조금 싫어졌다. 그깟 키스 한번. 입맞춤 한번이 어떻다고. 라이트 노벨과 애니메이션에서는 싸구려 서비스로도 못 들어가는 축인데 말이다. 

키스를 한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도 아니란걸 알고 있다. 녀석은 여전히 날 좋아할거고, 더 좋아할 수도 있고. 단점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내가 두려워 할 뿐이다. 


"어이, 아카시." 


잠시 뒤에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아카시에게 다가가 뒤로부터 어색하게 허리를 껴안았다. 뒤돌아보는 아카시에게, 고생했어. 도장 찍어줄게- 라고 말하자 표정이 순식간에 환해진다. 사귀고 나서부터 안 것중 하나가, 아카시는 의외로 포커페이스가 아니라는 것. 


"고마워요." 

"나야말로, ...너무 무리나 하지 말라고. 그리고 내일은 내 차례니까, 설거지." 


앞으로 세 개. 아마 삼 일쯤일까. 내 예상은 무참히 빗나갔지만.



"아카시. 다녀왔, ...자는건가." 


침대에 비스듬하게 누워 몸을 구부리고 자는건 평소의 그 답지 않았기에 나는 다가가서 한참동안 바라봤다. 곧은 얼굴 선과 수려한 짜임, 이럴때만 또 느끼지. 문득 이녀석은 자기 자신의 외모를 자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져 짐을 내려두고 옆에 앉아 제 허벅지 위에 머리를 조심스레 올려두자, 입술 사이에서 작은 신음이 나와 잠시동안 굳어버렸다. 

연습, 피곤했나. 다행히도 계속 잔다. 


'...연습 해볼까.' 


세 번쯤 얼굴 위로 손을 휘휘 저어보고, 볼도 살짝 쓰다듬어봐도 일어날 기미가 없이 규칙적인 숨과 함께 아카시는 자기만 한다. 문득 입술로 시선이 향해 바라보자 살짝 틈 사이로 혀가 보였다가 다시 닫힌다. 나는 도저히 심박수의 상승과 이 현상과의 관계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안 깨겠지, 하고 고개를 조심스레 숙여 제 입을 아카시의 입술과 대면시켰다. 일단 서서히 알아가자고, 세상의 관계란건 다 그런거야. 그러니까 미팅같은거지...쿵쿵거리는 심장소리가 안 들리길 기원하며 가볍게, 맞닿았는지도 모르겠을 입맞춤을 했다. 수 초 같기도 하고 수 분 같기도 했고, 몇시간 같기도 했다. 길어진 제 머리칼이, 고개를 들 쯤에서야 생각났다. 간지러웠을텐...- 


"치히로." 


순식간에 시야가 뒤바뀌어 천장이 보이고, 위로 올라탄 아카시가 보였다. 어라, 라고 생각할 틈도 주지않고 거칠게 입술을 물어띁기고, 핥아지고,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듯 키스당했다. 


저기요, 키스 만으로도 동정을 빼앗긴 기분이 듭니다만. 내가 정신이 들고도 굳은 석상처럼 있는 동안에도 아카시는 연결을 끊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한숨을 쉬며 나는 눈을 감고 느낌을 갈무리했다. 첫 키스란 절대로... 달콤한 향도 부드러운 촉감도 아니었다. 축축하고, 띁겼으며, 멈추지 않는 흡착기같은 느낌이잖아. 이상하게 비웃으면서도 이 키스가 싫지 않았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을까. 키스의 단점을 얘기하라면,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청나게 스스로가 이상해져버린 것 같다고. 


그가 입술을 떼고, 우리는 같이 한참동안 헐떡이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어째 공범자가 된 기분이었다. 


"...후불제로 하는걸로 해 주시죠." 

"뻔뻔하긴, 천하의 아카시님이." 

"세 개, 금방 채울테니까." 

"이건 도장 백 개 분이야." 

"그것도 금방 채울게요." 

"...하아." 

"좋았죠?" 

"그래." 

"고마워요." 


...라는 걸로, 첫 키스는 세달 하고 일주일만에 했습니다. 스레의 거주민분들, 박수로 축하해주시죠. 나는 컴퓨터를 켜서 익숙한 사이트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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