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전력 60분 <일상> AU 주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필멸의 존재인 내가 영생의 너를 지하실 관 안에서 발견한 이야기








"어서 와."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 없이 그를 지나쳐 안쪽으로 향했다. 이젠 한숨조차 나오지 않는다. 전공 책으로 무거운 가방을 내려두고, 곧바로 침대에 누우려고 하자 그가 가까이 다가온다. 자리 없어, 라고 말하기도 전에 옆에 비집고 들어와 풀썩 누워버린다. 1인용 침대가 꽉 차버린다. 이걸 힘으로 밀어낼 수도 없고 딱히 그러기는 귀찮아(어차피 질 싸움이라는걸 깨달았다) 나는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그도 이정도면 눈치 챘을텐데, 정말 모르는건 아니겠고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 한숨이 나오려 하자 고개를 벽쪽으로 들렸다. 그가 나의 일상에 들어온지 오늘로 일주일 째이다.



프롤로그를 얘기하자면 그렇게 길지는 않다. 이해를 할 사람이 있을까가 문제지.



  대학생이 되어서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자취를 하게 된 나는 집 주인의 부탁으로 건물 지하에 자리잡고 있는 창고 정리를 하게 되었고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한 그 곳에서 을 발견하고 만 것이었다. 


'관'이었다. 죽은 사람을 넣는 관.

가짜나 모형처럼 보이지 않았다는게 당연히 더 으스스하고 괴기스러웠다. 철제 장식이 테두리마다 고풍스럽게 되어있는 검붉은 그 관을 쓸어보다가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열어본 것이 화근이었지, 고통의 시작이었다. 골동품이라도 들어있을까, 생각했던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오히려 시체라면-아니, 생각해보니 이 편이 더 무서웠을까- 나았을텐데, 방금 잠든거 같이 멀쩡하고 평온해보이는 사람이었다. 

눈이 동그래졌다. 붉은 머리의 남자... 나이는 나보다 약간 아래려나, 무섭다든가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홀린듯이 나는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그의 뺨에 손을 댔다.


그리고 손목을 붙잡혔다, 바로 눈을 뜬 이 녀석에게. 


[깨워졌군.]


양 쪽 눈 색이 다른 그 것은 절대 인간이 아닌듯이 보였다. 그는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재빨리 움직여 바닥에 나를 쓰러눕히고 올라탔다. 상황판단은 뒤통수로부터 느껴지는 얼얼한 감각과, 붙잡힌 손목에서 냉기가 한참동안이나 느껴진 뒤에야 가능했다. 어둠 속에서 그는 나를 곧게 바라보았다. 마치 내 안쪽을 속속히 훑고 뒤집고 찔러보는듯한 거북한 눈길이었다. 마주치면 죽을거같은. 나는 필사적으로 피했지만 결국 그가 내 턱을 잡아, 우리는 마주보게 되었다.


[맞아. 인간이 아니지. 인간일 수가 없지 않나. 이런 관안에서 잠들어있는 사람이 있을리가.]


큭큭, 웃는듯한.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우고.

한편으로는 어딘가 지친듯한 속마음이 그의 표정 뒷면에서 풍겨져왔다.


[괴물이다. 흡혈귀지. 드라큘라라고도 해. 네가 깨운 것의 정체다. 어떤가? ...인간.]

"...마유즈미 치히로야."


  어마어마한 정체를 듣고 멍해진 머리는 생각하기를 그만뒀는지, 멋대로 입이 답해버렸다. 아니, 이 상황에서는 통성명을 하는게 좋은 수가 아닐텐데. 그가 밝힌 그의 정체를 보아하니 나는 그에게 먹이일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의 매체에서 표현된 흡혈귀와 인간의 관계는 그러하지 않은가. 그가 토마토를 먹는 미국 애니메이션 뱀파이어 캐릭터도 아닐거 같고. 그는 내 목에 차가운 손을 댔다가 뗐다. 온 몸에 순간 소름이 돌았다. 내 목에 이를 세우는 대신 그는 뭐라 작게 중얼거리는거 같았는데 듣지 못했다.


"...고 있어."

"응?"

"아니, 별것 아니다. 나는 아카시, 아카시 세이쥬로."


  뭔가 김이 빠진듯한 표정으로 그는 이내 내 위에서 내려왔다. 어딘가 두겹으로 중첩되어 웅웅대던 목소리도 평범하게 바뀌었다.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했나, 머쓱하게 먼지가 잔뜩 묻은 옷을 털자 콜록거릴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젠 어쩌지. 그에게 다시 관에 들어가 주세요, 라고 말하는 건 코미디 아닌가. 그는 내 표정과 생각을 읽었는지 오만하게 요구해왔다. 명령 쪽이 가까웠지만.


"너와 함께 살아야겠는데."

"하아? 말이 되는 소릴."

"네가 깨웠으니 당연한거 아닌가?"


고개를 기울이면서, 마치 '당신이 이 세상의 악을 불러냈으니 책임져야하지 않겠습니까?'하는 말투로 내게 말하는 그가 너무나도 얄미워보였다. 이때 그냥 난 모르겠다! 하며 지하실을 혼자 나설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내게 뭔 짓을 할지 몰라 섣불리 움직일수가 없었다. 속으로 투덜거리던 나는 한껏 우울해진 표정을 짓고 말했다. 아, 물론 한숨은 덤으로.


"...여기 정리나 하고 나가자."


* * *


   ...해서 이 흡혈귀는 내 자취방의 식객이 되었다. 그를 방에 데려오자 무언가 기묘한 감각이 든게 더 찜찜했다. 낯선 사람을 방에 들어오게 했는데 불편하지 않았다는 점과, 어쩐지 일이 이렇게 되어야만 했다는 느낌이 나를 한참동안이나 깊은 고민에 빠뜨렸다. 어디선가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걸까. 식객인 그는 붉은 머리와. 색이 다른 눈을 제외하면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 키는 나보다 작고, 뱀파이어다운 날개도 꼬리도 없다. 행동도 일단은 괴이한 면은 보이지 않는다. 내게 피를 달라는 말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이 지내게 된 이후로 나는 별다른 질문을 많이 하지 않았고 그도 입을 쉽게 열지 않았다. 단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가 있고, 내가 식사를 할때 그는 다른 곳에 앉아 있으며(허공을 보거나 내 책들을 읽는다) 잘때는 따로 자거나 같이 침대에 눕곤 했다. 어쩐지 길잃은 고양이 한마리를 데려온 기분이 점차 들었다. 물론 고양이는 이렇게 크지 않지만.


시한폭탄이 집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언젠간 그에게 왜, 여기 있고 어째서 깨어났으며 그의 목적과(세계 정복일까? 라는 우스운 상상도 해 보았다) 그의 영양분 섭취 방법에 대해서 물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물어보면 '조금 기묘한 나의 일상'이 완전히 사라져버릴까 걱정이 되어서. 그냥 여기서 별 다른 일이 더 생기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지금 내 일상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식객 한 명이 내 자취방에 머물고 있을 뿐, 그가 괴물다운 면모는 보여주고 있지 않으니까.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이 자기 위로는 그가 인간의 피를 묻히고 온 사건도, 힘을 각성해 교토를 쑥대밭으로 만든 사건도 아니고 다음날 밤, 내가 눈을 감고 잠이 들락말락 하고 있을때 입술에 말캉히 느껴지는 뜨거운 감촉으로 인해 깨져버렸다는게 참으로도 우스운 일이었다. 






책으로 내고싶었던 설정중 하나를 프롤로그격으로 써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