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먹 전력 60분 주제: 서투름





  마유즈미는 한참동안이나 제 검지 손가락에 단단히 감긴 반창고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아카시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돌아간지 얼마 안 되었고, 깨진 머그컵은 녀석이 다 정리해주었던지라 주방은 원래대로 깔끔해져 있었다. 그가 주방을 치울동안 마유즈미는 꼼짝도 안 하고 소파에 앉아있었고(물론, 녀석의 강한 권고 때문이었다) 아카시는 응급상자를 뒤져 소독 뒤에 반창고를 조심스레 감아주더니 능숙하게 파편들을 마저 치웠다.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네요, 쉬세요. 마유즈미는 오늘따라 그를 잡고 싶었으나 슬슬 그가 귀가할 시간이란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가.

-내일 뵙죠. 


  멍하게 한참 있던 다음에야 그는 자신이 그 고생을 한 아카시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걸 깨달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그 말을 평소에 잘 쓸 일이 없었다는건, 변명이 될 뿐이었다.


  이런데에서 자신이 참 속 좁고 표현에 서툴다는걸 깨닫게 된다. 머리를 벅벅 긁으려다가 손가락때문에 다시 얌전히 내려두었다. 아카시와 사귀면서, 제 그런 점들이 점차 부각되는 느낌이었다. 지금껏 딱히 남들이 자신을 잘 봐주길 바라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고, 칭찬을 받아도 그렇게 기분이 좋진 않았다. 공부도, 운동도 평균 이상이라 칭찬까진 아녀도 종종 '녀석, 꽤 하잖아.' 정도의 눈길을 받아보지 못한건 아니... 아... 눈에 띄지 않는 체질이니, 없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마유즈미는 뛰어나든 서툴든 괜찮은 타입이었다. 자신을 평가할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단 한명, 자신만을 눈에 담아두고파 하는 상대가 생겼다. 아무리 존재감이 옅어져도 알아채주는 연인이 있다. 사귀게 된지 한달. 그런 사람 앞에서 자신의 서투른 점만 자꾸 보이게 되어, 마유즈미는 심히 우울해졌다. 오늘은 커피를 타주려다 컵을 깨뜨렸고, 어제는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다 바지에 떨어뜨려버렸다. 저번주쯤에는 같이 먹은 식사를 계산하려다가 지갑에 현금이 없는걸 깨달아(전날 신작 전자 기기를 사버렸다는걸 까맣게 잊어버리곤 있었다! 놀랍게도) 당황해버린 적도 있었지. 그리고 매번, 아카시는 침착하게 상황에 대처하고 자신은 괜찮다며 평소같은 눈으로 바라봐주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농담을 섞어서 '하하, 선배. 이게 뭐에요. 하여간 참...' 이라고 말하는 타입이 아닌건 애초에 알았지만 차라리 가끔은 저렇게 말해주는게 나을 거 같았다.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 점점 서툴러지는 자신은 참을 수 없다.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내가 좋음'보다 '내가 싫음'이 커지는건 사양이다. 


  마유즈미는 계속 복잡한 표정으로 소파 위에서 꿈지럭거리다가 일찍 자러 갔다.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취미에 몰두하는 거였지만 뭘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조심히 들어갔냐는 메일을 한통 보내고, 완전 잠들기 전에 아카시의 답장이 온걸 졸림이 섞인 흐릿한 눈으로 보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


  아카시는 자기 전마다 매일 마유즈미와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은... 혀도 안 씹었고, 발도 안 걸렸으며, 젓가락으로 미소시루를 떠먹으려 하지도 않았고, 메일에 오타를 내지도 않았으며, 같이 만드는 저녁식사에 설탕대신 소금을 넣지도 않았다. 약속시간에 늦지도 않았다...! 놀라운건, 이 모든건 한달 안에 아카시가 행한 실수라는 것이었다. 아카시는 저번주까지 자신이 뭔 병에 걸렸을까 고민했지만, 그 원인을 금방 깨달았다. 이 서투름들은 모두 그로 인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문제 없었다. 자신이 멍청한 실수를 한 건 반쯤은 걸리지 않았고, 반쯤은 그에게 걸렸다. 그중 아카시가 십오분쯤 늦은건 별 일도 아닌듯 했다. 젓가락으로 미소시루를 먹었을 때는(정확히는, 시도를 한 것) 반응이 어땠던가, -마유즈미가 작게 소리내 웃었다. 아, 아카시는 왜 광대나 코미디언들이 그걸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거 같은 기분이었다. 예전에 보던 비웃음이 아닌, 식탁 건너편의 그가 좋다는 웃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느 서투름의 끝이자, 다른 서투름의 시작인 부분에서부터 함께한 사람이었다. 코트 위의 그 날, 자신이 나락에 떨어진거 같았던 그 때를 떠올렸다. 앞으로도 자신은 계속해서 서투를거 같았지만, 마유즈미 선배라면, 치히로라면 괜찮을거 같았다. 그여서, 서투른거라고 생각했다. 인과관계란 따지지 않는 편이 나았다.


-조심히 들어 갔어? 푹 자라. 

-안녕히 주무세요. 마유즈미 선배. 오늘도 즐거웠습니다.

-나도 즐거웠어. 그리고 고맙다.


  한참 들여다봐 조금 뜨거운 휴대폰 액정에, 아카시는 남기고 오지 못한 키스를 했다.